경북매일신문 칼럼

경북매일신문 칼럼 "어머니의 혼자 치는 화투"

신두환 2024. 11. 10. 14:04

어머니의 혼자 치는 화투.

                                  신두환 안동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시인. 

 

조선시대 《경국대전(經國大典)》에 “개가(改嫁)한 여자의 자손은 정직(正職)에는 서용(敍用)하지 말라.”고 하는 법이 있었다. 예전에 어떤 벼슬아치 형제가 장차 이 문제를 가지고 남의 청렴한 벼슬길 막으려 하면서 그 어머니 앞에서 이를 의논하자, “그 사람에게 무슨 허물이 있기에 이를 막으려 하느냐?” “그 윗대에 과부된 이가 있었는데 그에 대한 바깥의 논의가 자못 시끄럽기 때문입니다.” “그 일은 규방의 일인데 어떻게 알았단 말이냐?”

“풍문(風聞)이 그렇습니다.” “풍문이란 소리는 있으되 형체가 없다. 눈으로 보자 해도 보이는 것이 없고, 손으로 잡아 봐도 잡히는 것이 없으며, 허공에서 일어나서 능히 풍문으로 만물을 들뜨게 하는 것이다. 어찌하여 무형(無形)의 일을 가지고 들뜬 풍문 가운데서 사람을 논하려 하느냐? 더구나 너희는 과부의 자식이다. 과부의 자식이 오히려 과부를 논할 수 있단 말이냐? 앉거라. 내가 너희에게 보여줄 게 있다.”하고는 품고 있던 엽전 한 닢을 꺼내며 말하였다.

“이것에 테두리가 있느냐?”

“없습니다.”

“이것에 글자가 있느냐?”

“없습니다.”

어머니는 눈물을 드리우며 말하였다.

“이것은 너희 어미가 죽음을 참아 낸 부적이다. 10년을 손으로 만졌더니 다 닳아 없어진 것이다. 무릇 사람의 혈기는 음양에 뿌리를 두고, 정욕은 혈기에 모이며, 그리운 생각은 고독한 데서 생겨나고, 슬픔은 그리운 생각에 기인하는 것이다. 과부란 고독한 처지에 놓여 슬픔이 지극한 사람이다. 혈기가 때로 왕성해지면 어찌 혹 과부라고 해서 감정이 없을 수 있겠느냐?

가물거리는 등잔불에 제 그림자 위로하며 홀로 지내는 밤은 지새기도 어렵더라. 만약에 또 처마 끝에서 빗물이 똑똑 떨어지거나 창에 비친 달빛이 하얗게 흘러들며, 낙엽 하나가 뜰에 지고 외기러기 하늘을 울고 가며, 멀리서 닭 울음도 들리지 않고 어린 종년은 세상모르고 코를 골면 이런저런 근심으로 잠 못 이루니 이 고충을 누구에게 호소하랴.

그럴 때면 나는 이 엽전을 꺼내 굴려서 온 방을 더듬고 다니는데 둥근 것이라 잘 달아나다가도 턱진 데를 만나면 주저앉는다. 그러면 내가 찾아서 또 굴리곤 한다. 밤마다 늘 대여섯 번을 굴리면 먼동이 트더구나. 10년 사이에 해마다 그 횟수가 점차 줄어서 10년이 지난 이후에는 때로는 닷새 밤에 한 번 굴리고, 때로는 열흘 밤에 한 번 굴렸는데, 혈기가 쇠해진 뒤로는 더 이상 이 엽전을 굴리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도 내가 이것을 열 겹이나 싸서 20여 년 동안이나 간직해 온 것은 엽전의 공로를 잊지 않으며 때로는 스스로를 경계하기 위해서였다.”

이 이야기는 조선후기 연암 박지원이 지은 <열녀함양박씨전>이란 글 중의 한 부분이다. 나는 이 글을 읽을 때마다 홀로되신 두 분이 떠오른다. 한 분은 필자가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로되신 어머니이시고, 또 한 분은 6.25때 남편을 학도병으로 떠나보내시고 청상에 홀로되시어 지금까지 고고하게 살고 계시는 필자의 고모님이시다. 팔순이 넘어가는 이분들이 살아온 밤은 두루마리 가사집을 읽고 또 읽거나 아니면 바느질을 하시거나 손자손녀에게 옛날이야기를 해주거나 아니면 홀로 윷놀이나 화투놀이를 하며 어머니의 직분을 지켜온 열녀의 밤이었다. 덕분에 나의 조카들은 별순이달순이 이야기를 다 외우고 모두 효도 고스톱을 익힌 후에 유치원을 갔다. 이것이 어찌 나만의 이야기인가?

이것은 오늘날 홀로 화투놀이를 하시며 그 긴긴날 그 긴긴밤을 인고의 세월로 보내신 우리들 홀어머니의 자화상일 것이다. 내일이면 어버이 날이다. 남들이 어머니를 말하고 효도를 말할 때면 가슴이 아려오지 않는 자가 몇이나 있겠는가?

이 땅에 일찍이 홀로 되셔서 갖은 고생을 다하시면서 온갖 풍상을 겪으신 우리네 홀어머니들의 소리 없고 글자 없는 눈물로 쓴 일기는 이 이야기 속의 어머니와 별다르지 않습니다. 아직도 그 사무치는 외로움을 겪으면서도 애써 아닌척하시는 어머니들은 모두 이 땅의 열녀들입니다.

밤만 되면 도시의 반짝이는 네온사인은 수도 없이 많은데 이 노인들이 갈 곳이 어디에 있는가? “바릿밥 남 주시고 잡숫느니 찬 것이며 두둑히 다 입히고 겨울이라 엷은 옷을 솜치마 좋다시더니 보공(관속의 빈곳을 채우는 옷)되고 말어라”고 노래한 위당 정인보선생의 <자모사>는 이 어머니의 고귀한 희생을 안타까워하는 시조이자 우리들의 사모곡입니다. 어머니 저 병풍 그림 속의 닭이 꼬끼오 하고 울 때까지 어머니 그때까지 사세요. 마누라와 저는 어머니의 똥 맛을 볼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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