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교과서 황조가 번역은 문제가 있다.
신두환
2024. 11. 9. 17:19
<황조가>에서 ‘翩翩黃鳥’를 ‘펄펄 나는 저 꾀꼴새여’라고 번역한 것을 보면서 늘 못마땅해 했다, 그런데 이것을 또 ‘훨훨 나는 꾀꼴새여’로 번역하여 고등학교 교과서에 싣고 있다. “훨훨 나는 꾀꼴 새”는 있지도 않을뿐더러 날개 짓도 크고 멀리 날아가는 모양을 형상한 말이다. 여기에서 어떻게 암수서로 정다운 꾀꼬리의 이미지를 찾을 수 있겠는가? 소재가 시의 공간에서 고립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일반 사전적인 언어의 나열이 된다. 가령 자전에 “翩翩 : 새가 펄펄나는 모양”을 그대로 번역에 끼워 맞추는 번역이다. 이렇게 되면 이것은 시가 아니다. 시인 정지용은 “옥에 티나 미인의 이마에 사마귀 하나야 버리기 아까운 점도 있겠으나 서정시에 말 한 개 밉게 놓인 것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라고 했다. 번역은 시어 하나하나를 신중히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필자가 <황조가>를 번역한다면 시조의 형태를 취할 것이다. 왜냐면 조금이라도 황조가와 독자 간의 문자메시지를 해독하는 시간적 거리를 좁혀놓기 위해서이다.
꾀꼬리 포롱포롱 암수서로 정다운데
님을 잃고 헤매이는 처량한 이신세여
외로워라 이내몸은 뉘와 함께 살아갈꼬. (신두환,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