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기사
“상소는 왕 독재 견제하려 언로 터놓은 뛰어난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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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이 틀리다면 도끼로 내 머리를 쳐달라”며 도끼를 품은 채 왕에게 서슬 퍼런 상소를 올리던 선비들이 있었다. 이를 일컬어 ‘지부상소(持斧上疏)’라 했다.
선비, 왕을 꾸짖다 -상소로 보는 역사 이야기/신두환 지음/달과소/1만9500원
남명 조식은 벼슬을 던져버리고 지부상소를 올린 ‘상소문 스타’였다. 그는 조선 명종 10년(155년) 수렴청정을 하며 실권을 휘두르던 문정왕후를 궁중의 한낱 과부로, 명종을 유약한 고아라 부르며 준엄하게 비판했다. “자전(慈殿·임금의 어머니)께서는 생각이 깊으시기는 하나 깊숙한 궁중의 한 과부에 지나지 않고, 전하께서는 어리시어 다만 선왕의 한 외로운 아드님이실 뿐이니, 천 가지의 천재(天災)와 억만 갈래의 민심(民心)을 어떻게 감당하고 수습하시겠습니까”라고 했던 것. 이 상소는 당대의 선비들에게 “은일 처사를 표방하면서 정직을 가탁하고 공명을 낚는 자가 참으로 많은데, 어질도다. 조식이여”라는 극찬을 얻었다. 그리고 을사사화의 피바람으로 움츠러든 조선 선비사회에 새로운 기상을 불러일으켰다.
목숨을 내놓고 직언하던 옛 선비들의 강직한 기상이 잊혀진 이 시대에 ‘선비, 왕을 꾸짖다-상소로 보는 역사 이야기’는 읽는 것만으로도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현전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상소인 김후직이 진평왕에게 올렸던 상소를 비롯해 역사상 유명하고 중요한 상소를 골라 해설과 함께 엮어냈다. 책을 쓴 신두환 국립안동대 한문학과 교수는 “상소문은 정의의 문학이자 정치문학의 꽃”이라면서 상소문은 문장에 대한 구성 논리와 설득을 위한 비유, 당대 사회에 대한 현실인식과 문제의 핵심을 잡아서 풀어내는 진술, 사실적이며 장중하고 전아한 문체가 구사된 문예미학의 정점이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고려 충선왕 때 관리들의 잘못을 따지는 감찰규정(監察糾正) 자리에 있던 우탁은 지부상소를 몸으로 실천한 인물로 첫 손에 꼽힌다. 우탁은 충선왕이 선왕의 후궁과 통정한다는 소문을 듣고는 상복을 입고 도끼를 든 채 대궐에 들어가 왕의 패덕(悖德)을 지적하는 상소문을 올렸다. 이에 신하들은 놀라 벌벌 떨고 왕도 부끄러워 다시는 선왕의 후궁과 통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우탁은 벼슬을 사양하고 초막집으로 물러가 경서를 연구해 학자로서 후학들의 존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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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왕의 남자’의 한 장면. 왕 앞에 아첨하려는 대신들을 풍자하며 꾸짖는 궁중광대들의 모습에서 목숨을 내걸고 직언하던 선비들의 ‘지부상소’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직언직필이 선비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헌종 12년(1846년) 평안북도 용천의 기생 초월이 자신에게 내려진 숙부인의 직첩을 반려하면서 써내려간 상소문은 이 책에서 가장 가독률이 높은 장이다. 저자 역시 최고의 문제작으로 꼽은 작품이다. 군왕과 조정 관료들의 부패상을 생생히 거론하면서 자신의 지아비까지 정조준하는 초월의 상소는 선비들의 고답적인 문장에 비해 통쾌함까지 선사한다.
◇ 수렴청정을 하던 문정왕후와 명종을 준엄하게 비판하며 당대 ‘상소문 스타’가 됐던 남명 조식, 어린 임금에게 치국의 방책을 내놓은 퇴계 이황, 율곡 이이의 상소문은 정치문학의 꽃이라 할 만하다.
“신변에서 직접 겪은 일이라 리얼리티가 있고 천한 여자이기에 반사회적이며 신랄함이 매섭다. 사양 왕조의 사실을 실감 있게 파악할 수 있는 값진 사료”라고 평가받는 이 상소문은 안동 김씨 문중에 세전돼오다 1972년 뒤늦게 공개됐다.
물론 널리 우국애민의 정직한 언로를 받아들이는 위정자의 아량이 있어야만 가능할 터이다. 선조는 “불민한 자질로 어렵고 큰 기업(基業)을 지키게 되니, 하늘과 백성에 대해 죄를 짓게 되지 않을까 해 떨리고 두려운 마음으로 깊은 못가에 선 듯하고, 엷은 얼음을 밟는 듯해 두렵다. 의견 듣기를 목마른 때에 물 바라는 거 같이 하나니 신료들은 조정 대관으로부터 초야의 선비에 이르기까지 극언(極言)하고 숨기지 말라”며 상소를 요청하는 글을 내리기도 했다. 선조의 귀를 가진 위정자, 우탁의 기개를 가진 정치·언론인들이 절실한 요즘이다.
신 교수는 머리말에서 “상소문의 서슬 퍼런 정의감과 직설의 정직함은 오늘을 살아가는 데도 절실히 필요한 정론”이라면서 “상소는 왕의 독재를 견제하기 위해 언로를 열어놓은 뛰어난 제도”라고 평했다.
김은진 기자 jisland@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