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열과 부모의 마음
신두환 <안동대 한문학과 교수ㆍ시인>
어느 집인들 자식들이 소중하지 않으리오. 그러나 우리 대한민국의 아이들은 정말로 불쌍해 보인다.
부모님들의 과대한 사랑과 우려 속에서 하루하루를 공부로만 살아간다. 학교 수업을 마치자마자 곧장 학원을 두세 군 데를 거치고 저녁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온다. 우리는 이런 아이들을 우리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어찌 이것뿐이랴. 좀 심한 경우는 부모를 떠나 대도시로 나아가서 공부를 하거나, 아니면 기러기 아빠를 홀로 두고 먼 외국으로 가서 공부하기도 한다. 이 아이들은 언제 공부에서 해방 될까?
이런 조기유학의 열풍은 통일신라시대에도 이미 있었다. 최치원을 비롯한 일련의 대당 유학생들이 그들이다. 그들은 12,3세 때 벌써 배를 타고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다. 그들의 유학 생활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공부의 열풍에서 벗어나 아이들을 자유롭게 키우려는 사람들도 있다.
소위 대안 학교라는 곳에 보내어 들로 산으로 다니면서 풀이름이나 외우고, 노래나 부르면서 비교적 자유롭게 공부한다. 이것도 또한 부모님의 지나친 관심과 애정 속에서 벌어 질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 아이들이나 부모님을 탓할 마음은 없다. 왜냐하면 춤바람보다는 치맛바람이 나으니까.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을 무엇으로 막는단 말인가?
진나라 은일 시인 도연명(陶淵明)이 자식을 꾸짖는 시를 한 번 보자.
責子(자식을 나무라다)
白髮被兩彬(백발피량빈) : 흰머리 양쪽으로 귀밑머리 덮이고
肌膚不復實(기부불복실) : 피부는 쭈글쭈글 다 늙어 가건만
雖有五男兒(수유오남아) : 비록 아들이 다섯이나 있으나
總不好紙筆(총불호지필) : 모두가 종이와 붓을 좋아하지 아니 한다
阿舒已二八(아서이이팔) : 맏아들 아서는 벌써 열여섯 살인데
懶惰故無匹(라타고무필) : 게으르기는 본래부터 비길 데 없다
阿宣行志學(아선행지학) : 둘째 아선은 열다섯 살이 되는데
而不愛文術(이불애문술) : 이 녀석도 문장공부는 좋아하지 않는 구나
雍端年十三(옹단년십삼) : 아옹과 아단은 나이가 열세 살이나 되어도
不識六與七(불식육여칠) : 여섯에서, 일곱까지도 헤아리지 못 한다
通子垂九齡(통자수구령) : 통이란 막내 녀석 아홉 살이 되는데
但覓梨與栗(단멱리여률) : 오로지 배하고 밤만을 찾고 있다
天運苟如此(천운구여차) : 천운이 진실로 이와 같다면야
且進杯中物(차진배중물) : 술잔 속에 있는 술에게나 가봐야지 뭐.
이 속에 자식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어찌 없겠는가? 그의 자식 사랑과 꾸짖음에는 인간다움이 들어 있다. 지금 대한민국에 도연명 같은 자식이 있으면 엄마는 너 죽고 나 죽자고 길길이 뛸 것이고 아마도 아버지는 부자지간 인연을 끊자고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 아이들 중에 구구단 못 외우는 아이는 없다.
그렇다고 도연명의 이 천진난만한 아이보다는 훌륭하리란 법도 없다. 부모들이여, 이 자식들을 어쩌겠는가?
한편 강진 유배지에서 아들의 공부를 걱정하는 다산 정약용의 편지는 가슴을 쓰라리게 한다. 가족은 삶의 가장 안온한 울타리다. 으리으리하고 화려한 집도 내 손때가 묻지 않고는 남의 집일 뿐이다. 물건 하나하나에 가족의 기억이 묻어 있는 집, 함께 보낸 시간들의 추억이 먼지처럼 떠다니는 곳, 그곳만이 내 집이다. 내 집에서 내 가족과 함께 있을 때 비로소 나는 다리를 쭉 뻗고 꿈도 꾸지 않고 잠을 잔다.
지금 그 먼 나라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이여, 자식과 아내를 떠나보낸 기러기 아빠들이여, 그 아픔이 5월에는 어떠할꼬. 가끔 절해고도(絶海孤島)로 귀양 갔던 귀양객의 심정을 헤아려보곤 한다. 다산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아들 학연에게 쓴 편지를 어느 시인은 이렇게 번역했다.
이 깊고 긴 겨울밤들을 예감했을까, 봄날 텃밭에다 무를 심었다. 여름 한철 노오란 무꽃이 피어 가끔 벌, 나비들이 찾아와 동무 해주더니 이제 그 중 큰 놈 몇 개를 뽑아 너와 지붕 추녀 끝으로 고드름이 열리는 새벽까지 밤을 재워 무채를 썰면 절망을 썰면, 보은산 컹컹 울부짖는 승냥이 울음소리가 두렵지 않고 유배보다 더 독한 어둠이 두렵지 않구나.
어쩌다 폭설이 지는 밤이면 등잔불을 어루어 공부할 책을 엮는다. 나의 아들 학연아, 나이가 들수록 그리움이며 한이라는 것도 속절이 없어, 첫해에는 산이라도 날려 보낼 것 같은 그리움이, 강물이라도 싹둑싹둑 베어버릴 것 같은 한이, 폭설에 갇혀 서울로 가는 길이란 길은 모두 하얗게 지워지는 밤, 정자에 앉아 시 몇 줄을 읽으면 세상의 법도 왕가의 법도 흘러가는 법, 힘줄 고운 한들이 삭아서 흘러가고 그리움도 남해바다로 흘러가 섬을 만드누나.
자식에 대한 그리움이 가슴을 찢는다. 유배지에서 부모 노릇도 제대로 못하는 못난 아버지의 자의식이 뚝뚝 묻어난다. 너무나 인간적인 아버지의 안타까운 심정이 가슴에 어름 무더기를 쌓는다.
자식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부모의 심정은 서로 통한다. 세상의 부모는 모두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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