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 왕을 꾸짖다
선비, 왕을 꾸짖다
신두환 지음, 달과 소, 476쪽, 1만9500원
“전하는 사치만 일삼으옵니다. 밤늦게 술을 마셔 눈이 게슴츠레하고 몸을 가누지 못하며 익선관(翼善冠)도 벗어버리고 왼손으로 창녀의 치맛자락을, 오른손으로 지팡이를 잡고 난간에 기대서서 노래를 부르니…”
임금의 행태도 가관이지만, 대놓고 꾸짖는 글도 놀랍다. 때는 헌종 12년(1846). 상소(上疏)를 올린 이는 믿기지 않겠지만 15세 기생 초월(楚月)로 돼 있다. 2만1000자 분량의 장문의 상소로 조선 말기 최고의 ‘문제작’으로 평가된다. 무너져가는 왕조의 극단적인 패악상을 과거·사법·행정·세금제도 등 사회 전 영역에 걸쳐 통렬하게 고발하고 있다. 저자 신분 자체의 진위는 불명확하지만, 당시 국정의 구체적이고 기밀한 상황까지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다.
기생까지 상소를 올릴 수 있었던 나라. 전제 왕정의 언로(言路)도 이렇게 파격적인 면이 있다. 안동대 한문학과 교수인 저자는 삼국시대부터 일제에 의한 국권 침탈 직전까지 대표적 상소 20여 편을 엮고 해설을 달았다.
우리 역사에서 최초의 상소는 신라 진평왕(재위 579∼632)에게 올린 김후직(생몰연대 미상)의 글이다. 그의 상소는 ‘묘간(墓諫)’이라 해 두고두고 귀감이 됐다. 묘간이란 죽어 무덤에 묻혀서도 하는 충간(忠諫)이다. 김후직은 사냥놀이에만 정신이 팔린 진평왕에게 여러 차례 상소를 했으나 듣지 않았다. 죽음에 임박해 유언을 남긴다. 임금이 사냥하러 다니는 길에 무덤을 만들라고. 그가 죽고 난 뒤에도 사냥 행차를 하던 진평왕은 길가 무덤에서 “가지 마옵소서”라는 환청을 듣고 크게 뉘우쳐 정사를 돌봤다는 설화다. 지부상소(持斧上疏) 역시 선비의 기개를 상징하는 대표적 사례다. 도끼를 들고 가서 왕에게 고한다. 상소가 잘못됐다면 그 자리에서 도끼로 목을 치라는 것. 고려 말 성리학자 우탁(1263~1342), 임진왜란 때 조헌(1544~92), 강화도 조약에 대한 최익현(1833~1906)의 지부상소가 대표적이다.
책은 상소문을 통해 한국사의 실상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목숨을 건 상소는 충신들만 했던 게 아니다. “신들은 황송하게 죽음을 무릅쓰고 머리를 찧으며 피눈물을 흘리면서 삼가 이 상소를 올립니다.” 이 ‘피눈물’은 ‘한일합방’을 청원하는 친일파 이용구(1868~1912)의 눈에서 쏟아졌다. 조선의 황혼에 접해 쏟아진 상소문들을 읽으면 착잡하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그 시대의 눈으로 역사의 심층을 이해하는 데 일차적인 자료들이다. 독자들은 국왕의 입장에서 이 상소문들을 읽어볼 만하다.
책의 몇몇 곳에서 인명 등에 쓰이는 희귀한 한자들의 글꼴이 깨져 있다. 성의 있는 편집이 아쉽다.
배노필 기자
신두환 지음, 달과 소, 476쪽, 1만9500원
“전하는 사치만 일삼으옵니다. 밤늦게 술을 마셔 눈이 게슴츠레하고 몸을 가누지 못하며 익선관(翼善冠)도 벗어버리고 왼손으로 창녀의 치맛자락을, 오른손으로 지팡이를 잡고 난간에 기대서서 노래를 부르니…”
임금의 행태도 가관이지만, 대놓고 꾸짖는 글도 놀랍다. 때는 헌종 12년(1846). 상소(上疏)를 올린 이는 믿기지 않겠지만 15세 기생 초월(楚月)로 돼 있다. 2만1000자 분량의 장문의 상소로 조선 말기 최고의 ‘문제작’으로 평가된다. 무너져가는 왕조의 극단적인 패악상을 과거·사법·행정·세금제도 등 사회 전 영역에 걸쳐 통렬하게 고발하고 있다. 저자 신분 자체의 진위는 불명확하지만, 당시 국정의 구체적이고 기밀한 상황까지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다.
기생까지 상소를 올릴 수 있었던 나라. 전제 왕정의 언로(言路)도 이렇게 파격적인 면이 있다. 안동대 한문학과 교수인 저자는 삼국시대부터 일제에 의한 국권 침탈 직전까지 대표적 상소 20여 편을 엮고 해설을 달았다.
우리 역사에서 최초의 상소는 신라 진평왕(재위 579∼632)에게 올린 김후직(생몰연대 미상)의 글이다. 그의 상소는 ‘묘간(墓諫)’이라 해 두고두고 귀감이 됐다. 묘간이란 죽어 무덤에 묻혀서도 하는 충간(忠諫)이다. 김후직은 사냥놀이에만 정신이 팔린 진평왕에게 여러 차례 상소를 했으나 듣지 않았다. 죽음에 임박해 유언을 남긴다. 임금이 사냥하러 다니는 길에 무덤을 만들라고. 그가 죽고 난 뒤에도 사냥 행차를 하던 진평왕은 길가 무덤에서 “가지 마옵소서”라는 환청을 듣고 크게 뉘우쳐 정사를 돌봤다는 설화다. 지부상소(持斧上疏) 역시 선비의 기개를 상징하는 대표적 사례다. 도끼를 들고 가서 왕에게 고한다. 상소가 잘못됐다면 그 자리에서 도끼로 목을 치라는 것. 고려 말 성리학자 우탁(1263~1342), 임진왜란 때 조헌(1544~92), 강화도 조약에 대한 최익현(1833~1906)의 지부상소가 대표적이다.
책은 상소문을 통해 한국사의 실상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목숨을 건 상소는 충신들만 했던 게 아니다. “신들은 황송하게 죽음을 무릅쓰고 머리를 찧으며 피눈물을 흘리면서 삼가 이 상소를 올립니다.” 이 ‘피눈물’은 ‘한일합방’을 청원하는 친일파 이용구(1868~1912)의 눈에서 쏟아졌다. 조선의 황혼에 접해 쏟아진 상소문들을 읽으면 착잡하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그 시대의 눈으로 역사의 심층을 이해하는 데 일차적인 자료들이다. 독자들은 국왕의 입장에서 이 상소문들을 읽어볼 만하다.
책의 몇몇 곳에서 인명 등에 쓰이는 희귀한 한자들의 글꼴이 깨져 있다. 성의 있는 편집이 아쉽다.
배노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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