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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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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성리학은 병폐요인이 아니라 하나의 미학이었다. 조선성종 때부터 대두되기 시작하던 훈구대신들과 신흥 사림들의 대립은 연산군과 중종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신흥 사림들의 득세로 이어졌다. 고려말기에 안향으로부터 주자학이 전래된 이래로 꾸준히 발전되어오던 성리학은 조선 중기를 거치면서 새로운 사상의 국면을 맞는다. 이른바 사화로 불리는 한바탕 정쟁은 성리학을 조선 도학의 새로운 이념으로 고착화 시키고 있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하늘을 나는 새 한 마리, 동네를 돌아다니는 개 한 마리, 어느 것 하나 성리학적 형상사유를 벗어나서 일상이 존재하기란 쉽지 않았다. 사림파의 득세로 이루어진 새로운 공간에 역동적인 성리정신의 탄생은 개혁과 창조의 충동을 모든 면에서 제공해 주었다. 이러한 상승의 분위기는 민족문화의 변화를 요구하고 방향을 정해주었으며, 하..
중국 고대 결승에 대한 연구 중국 고대 ‘結繩’에 對한 一硏究 신두환 (안동대 한문학과 교수) -目次-1. 問題의 提起2. 漢字의 起源과 結繩3. 結繩에서 書契로4. 結論 이 논문은 漢字의 起源에 대한 敎育과 硏究의 一環으로 中國 古代의 結繩에 대해 硏究한 것이다. 한자를 교육하는 교사들은 한자의 기원을 교육할 때 결승을 언급한다. 5000년 중국 역사의 모든 문헌에는 蒼頡이 문자를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황제시대는 결승으로 나라를 다스렸다고 언급하고 있다. 결승은 언제 태동되어서 어떻게 발전되다가 어떻게 소멸되었을까? 결승은 정치에 활용되면서, 수많은 형태의 결승문자로 발전되었으며, 결승의 다양한 표현은 문자의 형태로 대신하여 표현되기 시작했을 것이다. 許愼의 「說文解字·敍」에도 蒼頡은 결승을 바탕으로 서계를 만들었다고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