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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의 발자취

아주신씨의 시조 신익휴가 거제도에서 세운 군공에 대하여.

<동사강목 제8하>, <고려사>, 인종6년, 1128년, 기록. <화해사전>, <아주신씨 안동파보 서> 에서 시조 신익휴의 군공을 받고 아주군에 봉해진 사실을 알 수 있다.

 

<무신년 인종 6(송 고종 건염 2, 금 태종 천회 6, 1128)

 

10월 남계(南界)의 해적(海賊)이 평정되었다.

 

 이보다 먼저 남계(南界)에서 해적이 많이 일어났으므로, 어사승(御史丞) 정응문(鄭應文)을 선무사(宣撫使)로 삼아 가서 개유(開諭)하도록 했더니, 이때에 와서 명진(溟珍)송변(松邊)아주(鵝洲)3()이 모두 지금의 거제(巨濟)에 있다 의 해적(海賊) 좌성(佐成)  8백여 명이 투항하였다. 삼기현(三岐縣)지금의 삼가(三嘉) 에 귀후장(歸厚場)취안장(就安場) 2()을 설치하고, 의령현(宜寧縣)에 화순장(和順場)을 설치하여 이들을 거처하게 하였다.>

 

 고려인종 시기 김부식과 묘청의 난 등으로 고려는 어지러웠고, 거제에는 해적이 일어나 고려는 남북으로 혼란을 겪고 있었다. 이 시기에 신익휴시조가 거제도를 진압하고 아주군를 봉 받은듯 하다. 고려사는 조선초기 김종서 등에게서 쓰여지면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해서 기록한 것이다. 그러나 신현이 지은 <화해사전>에는 신익휴가 평산신씨 족보에 기록된 사실과 이시기 군공을 쌓고 아주군에 봉해진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화해사전은 고려말에서 조선초기를 살았던 정몽주의 제자 신현에 의해 쓰였으며, 원천석과 정몽주의 위폐를 모시고 사당을 지어 모셨다. 고려 정몽주에 대한 사실과 조선도학을 서술한 책으로 조선이 정몽주를 왜곡하고 비하하자 그의 제자들은 숨어서 기록할 수 밖에 없다. 더구나 정몽주의 직전 제자임에랴. 이 책을 위서라고 판단하는 것은 그 도학때문이 아니라 일 부 성씨들의 시조다툼이다. 중국학자 주생춘은 이 책은 훌륭한 저서라고 하였다. 신현은 영해신씨이다. 왜 남들도 이해하고 신익휴를 아주신씨 시조로 인정하고, 당대 족보의 서문으로 명문인 아주신씨 안동파보서문에 시조 신익휴와 공로를 받은 사실을 기록하여 놓았다.  남들도 우리 시조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데, 굳이 왜 이 사실을 불신하고, 위조된 가첩에 실린  엉터리 사실을 근거로 주장한 신석호 박사의 영미시조론 변증은 종파 간의 다툼에 휘말려  편을 들다가 궁색한 변증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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