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출범을 바라보며.
경북매일신문 칼럼
중국의 명나라 말기와 청나라 초기에 살았던 유명한 문예비평가, 김성탄이란 사람은 인생에서 통쾌한 일 33가지를 모아서 「불역쾌재삼십삼칙(不亦快哉三十三則)」이란 글을 써 놓았다.
논어 「학이學而」편 첫 구절에서 공자는 ‘不亦樂乎(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를 외치면서 유쾌한 일을 나열한 적이 있다. 이것을 패러디한 “또한 통쾌하지 아니한가?”라는 강조 화법을 통하여 통쾌한 일에 대하여 33조목을 기록해 놓았다. 모두 재미있는 내용이다. 그 내용을 일일이 모두 열거 할 수는 없지만 그 중에 두 개만 선택해서 우리 정치 현실에 비유해서 스토리텔링을 전개하려고 한다.
첫 번째 통쾌한 일.
“ 7월의 어느 무더운 날, 바람은 한 점도 불지 않고, 구름은 한 점도 보이지 않는다. 앞 정원이나 뒤뜰도 불덩이 같다. 날던 새도 그림자를 감췄고, 온몸에서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점심을 먹으려 해도 너무 더운 탓에 젓가락은 들 마음조차 들지 않는다. 그래서 참다못해 돗자리를 가져다 마당에 깔고 그 위에 벌렁 드러누워 본다. 그렇지만 돗자리는 눅눅하고 파리들은 얼굴에 날아와 앉아, 쫓아도 사라지지 않는다. 이 지겨운 날에 갑자기 천둥이 우르릉 쾅쾅 울리고 먹구름이 전쟁터로 향하는 대군처럼 당당하게 밀어닥친다. 이윽고 소나기가 쏟아져 처마에서 빗물이 시원하게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 또한 통쾌하지 아니한가(不亦快哉).” 이것은 분명 통쾌한 일이다.
이 이야기를 한국의 정치무대로 옮겨보자. 이야기 속의 뜨거운 여름날과 같은 지난 한국의 정치를 보아오면서 국민들의 마음은 무더위에 지쳐 속이 터지기 일보 직전의 상황이었다. 이런 날이 계속되다가 어느 날 구름은 꽉 끼었는데 비는 오지 않는다. 이쯤 되면 불쾌지수는 극에 달한다. 이런 상황을 표현한 고사 성어는 ‘밀운불우(密雲不雨)’이다. 필자는 지난 정치를 과감하게 이 고사성어로 평가한다. 아직도 이야기 속의 소나기는 이 땅에 내리지 않고 있다. 새 정부에서는 단지만한 빗방울이 통쾌하게 쏟아지기를 기원한다.
김성탄의 그 여섯 번째 통쾌한 글은 이렇다.
거리를 걷고 있자니, 두 명의 불량배가 무엇인가 심하게 다투고 있다.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 피가 끓고, 눈에는 분노가 가득차서 불이 쏟아지는 것 같아 마치 한 하늘아래서는 살 수 없는 불구대천의 원수와 같은 모습이다. 그러나 서로 간에 예의만은 갖추고, 팔을 쳐든다거나 허리를 굽히며 절까지 하면서,
'댁에서는' 이라든가 '댁을',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는 안 되겠지요' 라는 둥,
매우 점잖고 거창한 말을 쓰고 있다. 그러나 그 시비는 그칠 줄을 모른다.
그곳으로 갑자기 하늘을 찌를 듯 건장한 사나이가 팔을 휘두르며 다가와서는
커다란 소리로 ’집어치워!’하고 외친다. 아아, 이 또한 통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 이야기 속의 두 불량배가 어쩌면 우리국회의원들과 이렇게도 닮아있나? 다만 다른 것은 서로 쥐어뜯고, 시비를 걸고, 끝까지 물고 놓지 않는 것이 좀 심할 뿐. 이번에는 정부 조직법, 삼성 특검, 이명박 특검, 공천 갈등, 영어교육정책, 등 지겹도록 밑도 끝도 없이 또 다투고 있다. 짜증나는 싸움, 싸움, 싸움. 이 지긋지긋한 정치는 언제나 끝나는가? 不亦딱乎(또한 딱하지 아니한가?). 어디선가 이 이야기 속의 거장이 나타나 천둥 같은 목소리로 통쾌하게 한마디 ‘다 집어치워?’ 라고 고함쳤으면 좋겠다.
독자 여러분! 무자년 새해에 가장 통쾌한 일 세 가지만 꼽으라면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이명박 새 정부에게서는 통쾌한 일이 많이 생기기를 기대한다.
어느 날 “남북을 가로막고 있던 철조망을 걷어치우고, 대한민국 국민들이 드디어 통일을 이루었습니다.”라는 호외가 거리에 눈처럼 휘날린다면 不亦快哉아! 한국이 월드컵 축구 결승전 연장전 끝에 시원한 한골을 성공하여 “슛! 고울 인!”이라는 아나운서의 목이 터져라 외치는 소리가 삼천리 방방곡곡에 울려 퍼진다면 不亦快哉아! 대한민국 영토 어느 곳에서건 매장량이 무진장한 유전이 발견되어 시커먼 석유가 펑펑 쏟아진다면 不亦快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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