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아름다움과 성교육 비판.
안동대 한문학과 교수, 신두환.
사람의 얼굴이 모두 다 똑같지 않듯이 성에 대한 생각도 모두 다르다. 모두 다른 것을 한가지로 똑 같이 보려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세상에 여자보다도 더 아름다운 것이 또 있을까? 이 여자의 아름다움을 성의 대상으로 삼는 속물들 때문에 여자의 아름다움이 엉망진창이 되어가고 있다.
잠시 성문제를 언급해 보자. 사실 어느 지역 어느 초등학교 성 사건이 보도 되었을 때 언급하고 싶었던 문제이다. 이 문제는 성교육을 강화되어야 한다는 쪽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 이런 사건은 어설픈 성교육 때문에 생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교육은 성을 아름답게 바라보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성을 자극하고 성에 호기심을 불어넣으며 성을 해방 시키는 무의도의 의도가 있어버린 것은 아닌가? 수년 전에 성교육으로 유명한 어느 여성의 성교육 장면을 보았다. 한마디로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혼났다. 그것이 어디 포로노 교육이지 성교육인가? 한마디로 잘못된 성교육이었다. 성교육은 공개적으로 하는 교육은 아니라고 판단된다. 개인적으로 공개된 성교육을 강력히 반대한다. 성은 자연스럽게 알아가야 하는 원초적 본능이다. 성은 신성하고 신비한 것이다. 감추는 것이 맞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성기는 가장 신성하게 숨겨야 하는 것으로 문자 너머로 약속되어 있다. 성교육은 드러내 놓고 남녀 학생들이 같이 받아서는 안 된다. 감추어야 신비하고 감출수록 그 순수한 아름다움을 간직한다. 신비와 순결이 간직되어 있기에 청춘남녀가 아름다운 것이다. 성은 가장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 사랑을 나눌 때 가장 아름다운 최고의 표현방식이다. 이것을 함부로 미리 써버리면 그 아름다움을 표현할 길은 없어진다. 이성을 존경하라! 세상에 순결한 청춘 남녀보다도 더 아름다운 것이 또 어디에 있는가? 갓 초례를 치르는 신부보다 더 아름다운 광경이 또 어디에 있는가?
힌두교 창조설의 작가는 벌써 4000년 전에 본질적으로 오늘과 다름없는 신이 여자를 만들 때 꽃의 아름다움 화려함, 새의 고운 노래 소리, 무지개 일곱 가지 빛깔, 미풍의 부드러운 입맞춤, 물결의 곡선, 양의 온순함, 여우의 교활함, 구름의 자유분방함, 소나기의 변덕 이런 것들을 추려 모아서 여성의 몸속에 집어넣어 가지고 남자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했다고 한다. 이런 아내를 얻은 힌두의 아담은 행복했다. 두 사람은 아름다운 지상에서 뛰놀며 돌아다녔다. 그런데 얼마 후 아담이 신에게 달려와서 말했다.
"이 여자를 어디로든 쫓아내 주십시오. 도저히 함께 살 수 없습니다." 신은 그 말을 들어 힌두의 이브를 그에게서 떼어 놓았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아담은 외로워서 견딜 수 없었고 아무런 즐거움도 느낄 수 없었다. 마음이 울적해 졌다. 그래서 아담은 다시 신을 찾아가 간청했다. 다시 그 여자를 되돌려 주십시오. 여자 없이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습니다. 신은 그 말대로 이브를 다시 보내 주었습니다. 며칠 후 아담은 다시 신 앞에 나아가 제발 그 여자를 데려가 주십시오. 맹세하겠습니다. 신의 무한한 지혜는 다시 그 소원을 들어 주었다. 그랬더니 결국 아담은 네 번째 다시 와서 여자 없이는 살 수 없다고 호소해 왔다. 신은 아담에게 다시는 마음이 변하지 않을 것, 좋든 나쁘든 그 여자와 운명을 함께 할 것, 가능한 한 방법을 강구하여 이 지상에서 종신토록 같이 살 것을 약속 하도록 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에는 엄격한 책임이 따른다. 이혼은 신의 가르침을 배반하는 이기주의에서 비롯된다. 그 아름다움은 영원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아름다움을 책임져야 하지 않겠는가? 제발 이혼을 교육하지 마라! 이혼은 무엇으로도 용서될 수 없다.
또 힌두교의 창조설화인 트바슈타(Tvashta)에서는 여자의 창조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새끼 사슴의 눈동자와 햇살 안개의 눈물로 반죽하고, 토끼의 겁과 공작새의 허영과 부드러운 제비의 목구멍을 자유로운 바람으로 휘저었다. 여기에다가 창조신은 다이아몬드의 자랑과 호랑이의 잔인함과 불의 따스함과 눈의 차가움을 가미하였다. 그래도 부족해서 어치 새의 재잘거림과 비둘기의 울음을 섞어 여자를 만들었다.” 고 전한다.
이 아름다운 여성의 성을 훼손하는 행위는 인류의 가장 큰 범죄이며 가장 잔인한 범죄이다. 행복의 원천인 성에 대한 범죄는 강하게 처벌되어야 한다. 지조와 절개를 목숨으로 지켜낸 우리 조상들의 아름다움은 다소 우원하고 고집스러워 보이더라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었음을 자랑스럽게 여겨야 한다. 세계의 다른 어떤 나라의 문화보다도 우리의 성문화는 고도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신성불가침이었다. 이런 문화의 차이를 버려 버린 채 서양의 성 개방의 문화를 따라 학생들을 성교육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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