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의 종교들.
안동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시인.
대한민국의 종교가 도를 넘은 것이 오래이다. 천주교, 기독교, 불교 등 각종 종교가 미국산 소고기 수입개방 문제로 붉어진 촛불시위에 뛰어 들어 종교의 본래의도와는 다르게 정치시류에 영합하고 있다. 금욕과 청빈과 희생으로 자기 종교의 교리를 엄격하게 실천하며 가장 바르게 살아가야할 종교인들이 본분을 망각하고 경거망동하고 있다. 거기 어디에 종교의 논리가 있는가? 이것은 양심으로 살아가야하는 종교인들의 잘못된 정치개입행위이다. 더구나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는 그 어지러운 곳은 종교인들이 갈 곳이 못된다. 미국산 소고기를 먹으면 진실로 머리에 구멍이 나는가? 국민 대다수는 이제 촛불시위를 중지하기를 원하고 있다. 점잖고 지혜로운 국민들은 이 순수하지 못한 정치색 짙은 종교인들의 우스꽝스런 행위에 의아해하고 있다. 그들은 막대한 신도들을 확보하고 그것을 토대로 정치와 교육 등 사회 전반에 압력을 가하며 그들의 욕심은 도를 넘는데도 조금도 거리낌이 없다. 이제는 나라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조선 건국의 주역이었던 삼봉 정도전은『불씨잡변』의 한 편인 「불씨 걸식의 변(佛氏乞食之辨)」에서 말하기를, “불씨가 그 최초에는 걸식(乞食)하면서 먹고 살 뿐이어서, 군자(君子)는 이것을 의(義)로써 책망하여 조금도 용납함이 없었는데도, 오늘날에는 저들이 화려한 전당(殿堂)과 큰 집에 사치스러운 옷과 좋은 음식으로 편안히 앉아서 향락하기를 왕자(王子) 받드는 것 같이 하고, 넓은 전원(田園)과 많은 노복을 두어 문서가 구름처럼 많아 공문서를 능가하고, 분주하게 공급하기는 공무(公務)보다도 엄하게 하니, 그의 도(道)에 이른바 번뇌를 끊고 세간에서 떠나 청정(淸淨)하고 욕심 없이 한다는 것은 도대체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가만히 앉아서 옷과 음식을 소비할 뿐만 아니라, 좋은 불사(佛事)라고 거짓 칭탁(稱托)하여 갖가지 공양에 음식이 낭자(狼藉)하고 비단을 찢어 불전(佛殿)을 장엄하게 꾸미니, 대개 평민 열 집의 재산을 하루아침에 온통 소비한다. 아아! 의리를 저버려 이미 인륜의 해충(害虫)이 되었고, 하늘이 내어주신 물건을 함부로 쓰고 아까운 줄을 모르니 이는 실로 천지에 큰 좀벌레로다.“ 라고 하여 당시의 부패한 불교를 혹평하였다.
생산적인 일에는 조금도 간여하지 않으면서도 막강한 부와 권력을 누리며 사치와 향락에 빠진 종교를 질타했던 이 섬뜩한 비판은 지금도 유효하다. 오늘날 교회의 목사, 불교의 스님, 천주교 신부들 등 일부 종교인들의 사치스러운 생활상은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들이 사용하는 사치스러운 종교비품은 도를 넘었고, 고행을 해야 할 종교인들이 고급 승용차를 타는가하면 화려한 종교의 전당들은 지나치게 웅장하고 화려하다. 교회마다 다투어 해외에 전도사를 파견하는 등, 그들의 종교행사에 허비되는 비용은 어마어마하다. 이들이 누리는 사치와 향락은 이 백성들의 피와 땀과 눈물로 이루어진 것들이다. 절제하여야 옳지 않은가?
이 시점에서 이들 종교인들에게 경계가 될 만한 유명한 서산대사의 漢詩 한 편을 읊고 넘어가자.
踏雪野中去 눈 덮인 들판을 지나갈 때엔
不須胡亂行 모름지기 걸음을 함부로 걷지 마라
今日我行跡 오늘 지나가는 나의 발자국은
遂作後人程 드디어는 뒤 사람의 길이 될지니
종교는 국가의 안녕과 질서. 평화와 화목을 주제로 기도하여야 한다. 지금 일부 광화문에 모인 편협하고 욕심스러운 일부 종교인들이여 당신들은 행동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 종교인의 신분을 이탈하여 국가의 정책을 무시하고 종교의 참 진리를 훼절시키는 지금의 무절제 행위들은 후세 사람들의 비난거리가 될 것이니, 행동을 삼가고 경계하여 국민들로부터 지탄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하라. 종교가 정치에 개입하게 되면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할 뿐이다. 극도로 자제할 것을 엄중히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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