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석의 미학.
신두환 안동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지금 비석 밑에 있는 거북 모양의 형상은 무거운 짐을 지기를 좋아하는 비희(贔屭)이다. 이것을 거북이로 오인하는데 그것은 잘못이다. 그 근원을 밝혀둔다. 아울러 우리 옛 기물에 새겨진 형상은 그 근원에 대한 이치가 있는 동물형상에서 얻어진 것이 많다. 궁궐의 지붕 위에 있는 짐승들은 어떤 의미일까? 또 북 위의 고리에 있는 동물 형상, 칼자루에 달린 장식, 궁궐의 지붕 있는 동물의 형상들, 향로의 동물 등 각종 기물에 새겨진 이름 모를 짐승들은 고대 상상의 동물로서 그 고오한 미를 발하고 있다. 궁궐에는 이와 같이 많은 동물이 있다. 순박미와 기괴미와 고오미가 넘치는 궁궐의 동물들을 찾아서 그 근원을 밝혀 보자.
성호사설 제6권 만물문(萬物門) ; 용생구자(龍生九子)
“용(龍)이 새끼 아홉을 낳는데 용은 되지 않고 각기 좋아하는 것이 있었다.”라는 말을 홍치(弘治) 연간에 어떤 각신(閣臣)이 나기(羅玘)와 유적(劉績)의 말을 인용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첫째는 이름이 비히(贔屭)로서, 형상은 거북과 흡사하고 무거운 짐을 좋아했는데, 지금 비석(碑石) 밑에 받침돌이 바로 그 유상이다.
둘째는 이름이 이문(螭吻)으로서, 형상은 짐승과 같고 천성이 바라보기를 좋아했는데, 지금 지붕 위의 수두(獸頭)가 바로 그 유상이다.
셋째는 이름이 포뢰(蒲牢)로서, 형상은 용과 비슷하나 조금 작고 천성이 울기를 좋아했는데, 지금 쇠북 위의 꼭지가 바로 그 유상이다.
넷째는 이름이 폐한(狴犴)인데, 형상은 호랑이와 흡사하고 위력이 있었다. 그러므로 옥문(獄門)에 세워지게 된 것이다.
다섯째는 이름이 도철(饕餮)인데, 음식을 좋아했다. 그러므로 솥 뚜껑에 세워지게 된 것이다.
여섯째는 이름이 공복(蚣蝮)인데, 천성이 물을 좋아했다. 그러므로 다리기둥에 세워지게 된 것이다.
일곱째는 이름이 애자(睚眦)인데, 천성이 죽이기를 좋아했다. 그러므로 칼 고리에 세워지게 된 것이다.
여덟째는 이름이 금예(金猊)인데, 형상은 사자와 흡사하고 천성이 불을 좋아했다. 그러므로 향로(香爐)에 세워지게 된 것이다.
아홉째는 이름이 초도(椒圖)인데, 형상은 조개와 비슷하고 천성이 닫는 것[閉]을 좋아했다. 그러므로 문포수(門鋪首)에 세워지게 된
것이다.
비히(贔屭)는 큰 거북 중에 주휴(蟕蠵)라는 따위인데, 오도부(吳都賦)에, “큰 영물로 생긴 비히는 머리에 영산을 쓰고 있다[巨靈贔屭首冠靈山].” 하였고, 후세 사람들은, “자라는 삼산을 머리에 이고 있다[鼇戴三山].”고 하였다.
이는 대개 무거운 짐을 좋아한다는 것으로써 이른 말인데, 어떤 이는 이르기를, “거북과 자라가 비록 다 같은 수족(水族)이고 개충(介虫)일지라도 이 오(鼇)란 자라는 바다 속에 있는 대별(大鼈)인데 영귀(靈龜)와는 다른 것이다.”고 하였다.
이문(螭吻)은 바로 치미(蚩尾)라는 것인데, 어떤 이는 치문(鴟吻)이라고도 하고, 《소씨연의(蘇氏演義)》에는, “치미는 바다에서 사는 짐승이다. 한 무제(漢武帝)가 백량대(栢梁臺)를 지을 때 이 치미가 나타났는데, 수정(水精)을 타고난 짐승으로서 능히 화재를 막을 수 있다 하여, 그 백량대 위에다 이 치미 모습을 만들어 세워 놓았다고 하였으나, 이는 지금 소위 치미(鴟尾)란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권유록(倦遊錄)》에는, “한(漢) 나라 때 궁전(宮殿)에 화재가 많았기 때문에 술법을 부리는 자가 말하기를, ‘하늘 위에 있는 어미성(魚尾星)의 모습을 만들어서 지붕 위에 세워 놓고 빌면 화재를 막을 수 있다.’ 하고, 당(唐) 나라 이후로는 사찰(寺刹)과 궁전(宮殿)에 모두 비어형(飛魚形)을 만들어 지붕 위에 세웠는데, 꼬리를 위로 치켜들게 하였다. 어느 때에 이 비어형이란 이름을 바꿔서 치미라고 했는지 알 수 없다.”고 하였으나, 그 만들린 모습도 역시 비어형이라는 것과는 같지 않고, 어떤 이는 이르기를, “동해에 뿔없는 용[虬]이 있는데, 꼬리는 솔개[鴟]처럼 생겼다. 입으로 물을 뿜으면 바로 비가 내리게 되는 까닭에 당 나라 때부터 그 모습을 만들어서 집 용마루에 세웠다.”고 하였으나, 이 모든 말이 모두 서로 같지 않다. 그러나 수형(獸形)으로도 만들고 어형(魚形)으로도 만든 것은 대개 풍속이 변천됨에 따라 그렇게 된 것이고, 설명한 자도 역시 그 형용에 따라 그 해설이 다르게 했을 뿐이다.
포뢰(蒲牢)란 것은 서경부(西京賦)에 상고하니, “고래가 가끔 일어나면 큰 북이 제절로 꽝꽝 울린다[發鯨魚鏗華鍾].”고 하였다. 이선(李善)은 이르기를, “바닷가에 있는 포뢰라는 집승은 천성이 고래를 두려워한다. 매양 무엇을 주어 먹을 때에 고래가 물결 위로 뛰어 오르면, 포뢰는 몸둥이를 움추리면서 우는데 그 울음이 큰 북소리처럼 웅장하다. 이러므로 지금 사람들이 모두 북 위에다 포뢰의 모습을 만들어 세우고 토막나무를 고래 모습과 같이 깎아서 북채를 만들어 친다.” 하였으니, 설종(薛綜)이 이른, “고래가 한 번 치면 포뢰가 크게 운다.”라는 말이 역시 이것이다.
폐한(狴犴)이란 것은 《자서(字書)》에 상고하니, “일종의 개[犬]로서 주둥이가 검고 도둑을 잘 지키는 까닭에 옥(獄)을 한(犴)이라 한다.” 했고, 또 “한(犴)은 한(豻)과 같은데 들개[野犬]라는 것이다. 여우처럼 생긴 것이 몸둥이는 검고 키는 일곱 자나 되며 머리에는 뿔이 하나로 되었다. 오래 묵으면 몸에 비늘이 생기고 호랑이도 능히 잡아 먹는 때문에 사냥하는 사람이 모두 두려워한다.”고 하였다.
《주례(周禮)》에는, “군사가 한후(豻侯)를 쏘는데 한(豻)이란 개는 도둑을 잘 지킨다. 군사도 잘 지키는 것을 좋게 여기는 까닭에 한후를 쏘도록 한다.” 하였으니, 옥문(獄門) 앞에 세워 놓았다는 한(犴)도 이런 따위를 가리킨 것인 듯하다. 《시경》에 이르기를, “한(豻)과 옥(獄)을 다스리는 데는 모두 알맞도록 해야 한다.” 했고 《한시외전(韓詩外傳)》에도, “시골에 있는 감옥(監獄)은 한(犴), 중앙에 있는 감옥은 옥(獄)이라 한다.”고 하였다.
도철(饕餮)이란 것은 《여씨춘추(呂氏春秋)》에, “주(周) 나라 솥에는 도철을 새겼는데, 머리만 있고 몸둥이가 없는 것은 사람을 잡아 삼키다가 목구멍에 넘어가기 전에 해가 그 몸에 미쳐서 죽었다.”고 하였으니, 이는 대개 사람이 음식 탐내는 것을 경계한 말이고, 《주례》에는, “보궤(簠簋) 뚜껑에 거북 모습을 만들어 새겼다.” 하였으니, 이도 역시 거북이란 능히 먹지 않고 사는 까닭에 사람이 음식 탐내는 것을 경계하라는 뜻이다. 또 이른바, “보개는 꾸미지 않는다[簠簋不飾].”라는 말도 음식 경계하지 않음을 이른 것인데, 옛 사람은 이런 기명(器皿)에도 매양 탐식하지 말라는 뜻으로 경계하였으니, 이 도철을 상징한 것과 서로 같은 것이다.
공복(蚣蝮)이란 것은 자세히 알 수 없고, 금예(金猊)란 것은 사자보다 조금 다른 종류이며, 애자(睚眦)란 것도 자세히 알 수 없다.
초도(椒圖)란 것은 《후한서(後漢書)》 예의지(禮儀志)에, “은(殷) 나라는 수덕(水德)으로 왕(王)이 되었던 까닭에 나방(螺蚌)을 문에 새겨 붙였다.” 했고, 《시자(尸子)》에는, “나방을 본받아 문을 열고 닫았다.”고 하였으니, 옛날 가사(歌詞)에,
문 거리에는 네 필 말이 끄는 큰 수레를 맞아 들이고 / 門迎駟馬車
들창 위에는 여덟 마리 초리 초도를 벌여 놓았구나 / 戶列八椒圖
라는 것이 바로 이 초도라는 짐승이다.
포수(鋪首)란 것은 양신(楊愼)이 이르기를, “포(鋪)란 그릇 이름인데, 공유포(公劉鋪)라는 그릇도 있고 청군양포(天君養鋪)라는 그릇도 있다. 모양은 보궤(簠簋)와 흡사하나 다만 보궤는 네 모가 있고 이 포(鋪)는 둥글게 되었다. 한(漢) 나라 때 문포수(門鋪首)란 게 있었는데, 그 형상을 본떠 만든 것이다. 이름을 포라고 한 것은 이 포진(鋪陳)한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또 이르기를, “궁문(宮門)에 다는 동환(銅環)을 금포(金鋪)라고 하는데, 혹은 위색(葦索), 혹은 나방(螺蚌), 혹은 금동(金銅)으로써 각각 그 임금의 덕에 따라 만들게 되었다. 지금도 해가 바뀌거나 혹 명절이 되면 문 위에다 위색을 다는 것이 역시 옛날 풍속이다.”고 하였다.
사조제(謝肇淛)는 이르기를, “용이 새끼 아홉을 나았는데, 포뢰(蒲牢)는 울기를 좋아하고, 수우(囚牛)는 소리를 좋아하고, 치문(蚩吻)은 삼키기를 좋아하고, 조풍(潮風)은 위험한 짓을 좋아하고, 애자(睚眦)는 살상을 좋아하고, 비히(贔屭)는 글을 좋아하고, 폐한(狴犴)은 다투기를 좋아하고, 산예(狻猊)는 앉기를 좋아하고, 패하(覇下)는 무거운 것 짊어지기를 좋아한다.”고 하였다.
또 《박물지(博物志)》에는, “헌장(憲章)은 갇혀 있기를 좋아하고, 도철(饕餮)은 물에 들어가기를 좋아하고, 실석(蟋蜴)은 비린 냄새를 좋아하고, 만전(蠻)은 바람과 비를 좋아하고, 이호(螭虎)는 무늬 있는 채색을 좋아하고, 금예(金猊)는 연기를 좋아하고, 초도(椒圖)는 입다물기를 좋아하고, 규설(虬蛥)은 위험한 곳에 서 있기를 좋아하고, 오어(鰲魚)는 불을 좋아하고, 금오(金吾)는 잠을 자지 않는다. 이도 모두 용의 종류인데 대개 용은 성질이 음탕해서 교접하지 않는 것이 없는 까닭에 종류가 가장 많다.”고 하였다.
이는 또 저 아홉 종류 이외에 하나가 더 많고 차례도 서로 뒤섞여서 정하지 않다. 무엇을 상고해서 그렇게 이른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이는 다만 근거도 없는 말을 억지로 적어서 많이 안다는 것을 자랑하고 남과 재주를 겨누어 보겠다는 데에 불과할 뿐이었으니, 어찌 하나하나 부합될 수 있겠는가?
[주D-001]용(龍)이 …… 있었다 : 이 말은 풍속에서 전하는 말.
[주D-002]…… 세워지게 된 것이다 : “첫째는 …… 세워지게 된 것이다”까지의 대문은 《승암외집(升庵外集)》에서 간추려 인용한 것이다. 《승암외집》에 의하면, “용이 새끼 아홉을 낳았는데, 용은 되지 않고 각기 좋아한 것이 있었다.”라는 말을 임금이 소첩(小帖)에 적어서 내각(內閣)에게 물으니, 각신 이문정(李文正)이 대답했다 한다. 이 인용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회록당집(懷麓堂集)》에 있는 글을 대강 다음과 같이 적는다. “龍生九子不成龍 名有所好囚牛 平生好音樂 今胡琴頭上刻獸 是其遺像 睚眦平生好殺 金刀柄上 龍呑口 是其遺像 嘲風平生好險今 殿角走獸 是其遺像……”
[주D-003]오도부(吳都賦) : 진(晉) 나라 좌사(左思)가 지은 삼도부(三都賦) 중의 하나.
[주D-004]《소씨연의(蘇氏演義)》 : 당(唐) 나라 소악(蘇鶚)이 지음. 최표(崔豹)의 《고금주(古今注)》와 비슷함.
[주D-005]백량대(栢梁臺) : 《한서》 무제기(武帝紀)의, “元鼎二年春 起栢梁臺 太初元年 栢梁臺實”라고 한 데 보이는데, 복건(服虔)의 주에는 ‘百梁一柱 故曰名爲百梁’이라 하고, 《삼보구사(三輔舊事)》에는, “以香栢爲梁故日栢梁”이라고 하였음.
[주D-006]서경부(西京賦) : 후한 때 장형(張衡)이 반고(班固)의 이경부(二京賦)를 본떠 지은 것.
[주D-007]이선(李善) : 당 나라 때 사람. 그는 글 상자[書簏]라는 별명이 붙여질 정도로 박식하였음.
[주D-008]설종(薛綜) : 자는 경문(敬文). 삼국시대 오(吳) 나라 손권(孫權)의 신하로서 시부(詩賦)로 이름을 날렸음.
[주D-009]《한시외전(韓詩外傳)》 : 한(漢) 나라 한영(韓嬰)이 《시경(詩經)》의 말을 인용하여 고사(古事)와 고어(古語)를 해설한 것임.
[주D-010]보개는 꾸미지 않는다[簠簋不飾] : 이 말은 《한서》 가의전(賈誼傳)의, “古者 大臣有坐不廉廢者 不謂不廉 曰簠簋不飾”에 보임.
[주D-011]《시자(尸子)》 : 전국시대 상앙(商鞅)의 스승이자 책 이름. 시자의 이름은 교(佼). 상앙이 초(楚) 나라에서 형(刑)을 받을 때 촉(蜀)으로 도망쳐서 《시자》라는 글을 지었는데, 시는 그의 성이고 자는 후인이 존칭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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