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의 연꽃
이 황
아름다운 누각 동쪽 모퉁이에서 연못을 굽어본다.
술자리를 파하고와서 소나기 내릴 때를 바라보니
물방울 도르륵 말려 가득차면 기울이는 기구 같아라
비 소리가 시끄러워도 싫지 않으니 옷깃을 여밈이 마땅하도다.
畵樓東畔俯蓮池 罷酒來看急雨時
溜滿卽傾欹器似 聲喧不厭淨襟宜
「雨中賞蓮」 退溪先生全集 卷4
이 시에 나타난 연꽃의 이미지에서 가장 돋보이는 시구는 당연히 ‘溜滿卽傾欹器似(물방울 도르륵 말려 가득차면 기울이는 기구 같아라’이다. 연 잎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도르륵 굴러 蓮잎에 담긴다. 연잎에 물방울이 많이 고이면 연잎은 무거워 기울이지요. 이 상황은 마치 곡식을 되로 헤아리는 것과 비슷하다. 아름다운 번역은 “연잎은 빗물을 되질하는 듯”이라고 하면 어떨까? 한시의 잘못된 번역은 그 시를 망치게 된다. 차라리 번역하지 않으면 더 나을 것을. 성리학자 퇴계 이황의 시에 이렇게 시원하고 섬세하고 정감 있는 동영상적 표현에 미학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퇴계의 시는 도학적인 시보다는 자연의 미를 발견해내는 미학적인 시가 더 많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또 여기에는 가득차면 비우는 연잎의 교훈에서 학자가 마음을 경계하며 수양하는 마음이 함의되어 있기도 하다. 공자는 문왕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이상한 물병을 발견한다. 이 물병은 가득차면 넘어져서 쏟아져버리고 적당한 량을 유지 해야만 서있을 수 있다. 이 물병에서 가득 차는 교만을 경계하고 겸손의 미덕을 본받으려는 교훈을 느낄 수 있었다. 공자는 자리 우측에 두고 교훈으로 삼았다. 이것이 座右銘(좌우명)이란 고사성어의 유래가 되었다. 이 시에도 이런 교훈성이 함의되어 있다고 본다.
퇴계는 주렴계와 주희의 연꽃사랑을 흠모하여 연을 읊은 시가가 많은데 그 중에 한 수 「榮川雙淸堂蓮塘」 에서는 연꽃을 사랑하여
다음과 같이 읊었다.
大葉盤盤小葉田 紅粧明媚擁蒼烟
微風颭蓋時時動 急雨跳珠箇箇圓
晦父欣逢數君子 濂翁愛說濯淸漣
憑闌盡日追餘賞 走覺襟懷已灑然 퇴계선생전집, 卷4.
이 중에 “微風颭蓋時時動 急雨跳珠箇箇圓 (미풍에 연잎은 때때로 일렁거리고 소나기에 뛰는 구슬은 낱낱이 둥글다.) 라고 한 시구가 당연히 압권인데 여기서도 연잎위에 구르는 물방울의 묘사가 돋보이는데 앞의 시와 이미지가 비슷하다. 퇴계는 비오는 날 연잎에 구르는 물방울의 고운 모습이 너무나 말고 깨끗하여 이것의 이미지를 묘사하려고 애썼다. 녹색 연잎에 투명하게 굴러다니는 옥구슬 같은 물방울, 연잎에는 물방울이 스며들지 않아서 물을 부어보면 도르륵 말리기만 한다. 또 누구나 소낙비 속에서 연잎을 직접 보게 되면 이 정결하고 고운 풍경에 걸음을 멈추게 된다. 퇴계 선생의 연잎사랑은 가슴에 묶은 때를 한 번 씻어내기에 족하다. 머리가 시원해져 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비와 연잎! 비와 연잎사이에는 청진함이 옥구슬처럼 굴러다니고 있었다. 고와라 녹색연잎은 물방울에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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