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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매일신문 칼럼

경북매일신문 신두환 칼럼

한국의 법난(法亂)

 

신두환 안동대 한문학과 교수 · 시인

 
대한민국은 지금 법난(法亂)이 일어났다. 집단의 이기가 법을 흔들어 대는 현상이 심각하다.
소위 때법이란 것이 이것이다. “악법도 법이다”라며 독배를 마시고 죽은 소크라테스의 준법정신은 잘못된 것이다.
“악법은 법이 아니다”라고 외치며 따르지 않고 항거했어야 한다.
법의 고자(古字)는 ‘수(水)’·‘치’·‘거(去)’의 3자가 합쳐진 것(法)이었다. ‘수’는 낮은 곳을 향해 간다. 아무리 평평해 보여도 물은 낮은 곳을 알아낸다.
아무리 깊고 험하고 기울어 있어도 물은 반드시 하나도 빠짐없이 깊은 곳을 채우되 그 수면은 수평을 유지한다. 물은 시비곡직을 잘 판단해 낸다. 물은 잘잘못을 판단해 내는 지혜가 있다. 물에는 순리가 있고 공평함이 있으며 다스림이 함의되어 있다.
광화문 앞에는 왜 해태가 있는 것일까? ‘치’는 해태라고 하는 전설적 동물로서 시비곡직을 가리는 일을 맡은 동물인데, 정의를 실현하는 상징이다.
해태는 또한 불을 삼키는 동물로 알려져 불붙은 분쟁을 가라앉힌다고 하여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재판을 할 때 이 해태 상 앞에서 했다고 한다. ‘거’는 악을 제거하는, 즉 응징적인 강제성을 나타낸 것이다. 그 약자인 ‘법(法)’도 따지고 보면 물이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순리적인 것을 뜻하는 글자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진나라는 법 때문에 망했다. 법가가 있었다. 전국시대(BC 475∼221)에 한비자(韓非子)의 영향을 받아 중국 최초의 통일제국인 진(秦:BC 221∼206)의 이념적 토대를 이루었다.
법가는 인간의 실제행동에 따라 정치제도를 만들어야 하며, 인간은 본래 이기적이고 앞을 내다볼 줄 모르는 존재라고 믿었다.
그러므로 백성이 통치자의 미덕을 인정한다고 해서 사회적 화합이 보장되지는 않으며, 오직 국가의 강력한 통제와 권위에 대한 절대복종을 통해서만 사회적 화합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법가는 특정한 행동에 대해 엄격하게 상벌을 내리는 법률체계를 내세워 정부를 옹호했다. 또한 인간의 모든 활동은 통치자와 국가권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권위주의적인 진나라는 이 정책을 가혹하게 실행했기 때문에 결국 15년 만에 무너졌고, 법가 철학도 중국에서 영원히 불신받게 되었다.
특히 신상필벌 정책은 법가의 가장 기본적인 주장으로, 모든 것을 법으로 다스려 법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법을 어기는 사람에게는 벌을 준다는 원칙을 공평하게 견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앙은 이러한 법을 시행하기 전에 먼저 높이 30척의 나무를 함양의 남문에 걸어두고, 그 옆에 만약 누구든지 목패를 북문에다 옮기면 상금으로 금 열 돈을 준다는 방을 붙였다. 아무 영문도 모르는 백성들은 모두 이상하게 여길 뿐 선뜻 나서서 그 목패를 옮기려는 사람이 없었다.
이에 관에서는 다시 상금을 금 50돈으로 올렸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그 나무를 북문으로 옮겼고, 상앙은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 사람에게 금 50돈을 상금으로 주었다. 이 소식은 빠르게 전국으로 퍼졌고, 백성들은 조정에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또한 상앙은 법의 집행에 있어서 엄격하였으며 법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번은 태자가 사형 판결을 받은 공족의 한 사람을 숨겨주었다.
범인을 숨긴 자는 범인과 동죄라고 하는 신법에 의하면 태자가 사형을 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에 상앙은 태자를 법에 따라 처리하려고 하였으나 차마 왕위를 계승할 태자를 죽일 수는 없었다.
결국 상앙은 효공과 상의하여 태자의 시종장(侍從長)인 공자(公子) 건(虔)에게 대신 형을 주어 코를 깎았고, 교육을 맡고 있는 공손가(公孫賈)를 문신의 형으로 다스렸다.
전통적인 규범으로는 대부(大夫) 이상의 귀족에게는 형을 가하지 않는 것이었으나, 상앙은 그러한 전통적인 규범을 깨뜨리고 법 앞에는 귀족도 서민도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하였던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백성들은 모두 법을 준수하여 아무도 감히 법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못했다. 어찌됐건 진나라는 법 때문에 망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헌법재판소’ 접촉 발언으로 대한민국은 또 한 번 법난이 일어났다. 종부세란 법을 만들어 집값의 안정을 꾀하는 가 싶더니, 또 종부세가 위헌이라며 소송을 하고 야단이다.
강 장관의 헌법재판소 접촉 발언은 사실상 너무나 부적절한 것이었다. 어디 이 뿐인가? 집단의 이기가 발동하면 거기에 따라 집회가 일어나고 때로 몰려가 법이 잘못되었다고 외치면 또 으레 법이 맞느니 안 맞느니 난리다. 어떤 법이 얼마나 만들어져 있는지 국민은 잘 모른다.
그러나 법의 무지는 용서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또 시민들이 머리에 띠를 매고 한 번 움직이면 또 법이 만들어 진다. 이렇게 법을 자꾸 만들면 나중에는 수족(手足)을 둘 곳이 없어진다. 법은 만드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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