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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매일신문 칼럼

경북매일신문 칼럼. 무자년 제야

무자년 마지막 밤에

 

신두환 안동대 한문학과 교수 · 시인

 

세월이 가기는 가는구나! 오늘이 무슨 날이던가? 무자년(2008)의 마지막 밤. 세계의 역사 연표는 한해를 더 기록하게 되고, 대한민국은 건국의 햇수를 한해 더 늘렸다.
이명박 대통령도 일 년을 청와대서 보냈고, 국민들도 각각 나이를 한 살씩 더 먹는다. 이 일 년의 마지막 밤에 왜 감회가 없겠는가.
옛 사람들이 섣달 그믐날 밤에 잠을 자지 않고 밤을 지새운 것은 진실로 까닭이 있다. 더군다나 타관객지에서 이 밤을 보내는 이들이야 그 심정이 어떻겠는가.
마음은 고향으로 달려가 옛 어른들을 뵙고 옛 동무들을 만나 정다웠던 그 옛날을 이야기 하고 싶겠지. 이 싱숭생숭한 날에 그 옛날 계곡(谿谷) 장유(張維, 1587∼1638)선생이 제야의 감회[除夕有感]를 읊은 시를 소개한다.

금년은 오늘이 마지막 날이요(今年今日盡) / 새해는 내일부터 시작이라네(明年明日是) / 일 년 삼백 예순 날(三百有六旬) / 빠르기가 급하게 흐르는 물과 같네(迅速如湍水) / 옛날 어렸을 적을 생각하노라면(念昔稚少日) / 설날만 돌아오면 어찌 그리 기쁘던지(歲時心獨喜) / 세월이 아까운 줄 깨닫지 못한 채(不解惜光陰) / 동네방네 다니면서 뛰어 놀았지 / 마음도 세월 따라 변해가는 법(心情隨歲變) / 만감이 어지럽게 교차하며 일어난다(萬感紛已起) / 청년의 뜻 하나도 이루지 못했으니(壯志百無成) / 젊음은 정말 믿을 수 없어라(盛年不可恃) / 옛 사람들 삼여의 여가를 중시했으니(故人重三餘) / 이 틈만 이용해도 공부가 족했을 텐데(籍此足文史) / 앉아서 근심걱정 황망하기 그지없어(憂病坐鹵莽) / 책상만 대하면 부끄러움 앞선다오 / 봄 여름 지난 뒤엔 가을 겨울 찾아오듯(元貞有常運) / 젊었다가 늙는 것은 필연적인 이치인 걸(壯衰有常理) / 날마다 새롭게 덕업을 닦는다면(德業苟日新) / 나이 먹는다고 걱정할 게 뭐 있으랴(豈復傷髮齒) / 아직은 잘 해 볼 기회 있으니(來者尙可追) / 이제부턴 아무쪼록 다시 시작해야지(自此須更始) / 시를 지어 반성하고 자책하면서(題詩以自訟) / 뜬눈으로 밤을 꼬박 지새운다네(不寐達晨晷).

어쩌면 이 제석(除夕)에 느끼는 감회가 이렇게 잔잔한 감동으로 와 닿는가? 기축(己丑)년 소띠의 새해가 서서히 밝아오고 있다.
지난 무자년 그 시끄럽던 미국산 소 이야기가 채 가시지도 않고 있는데 세월은 잠시도 틈을 주지 않는다. 참 다사다난했던 한해의 슬픈 이야기들이 쓰레기 버려지듯 저 바다 너머로 사라져 간다.
북경올림픽 금메달의 그 함성만 남기고 2008년의 모든 이야기들은 가라. 삭풍은 매섭게 불어오고 눈발은 찬데 낯선 산간에 낙엽 갈리는 소리 가슴을 찢는다.
경제는 더욱더 어려워져 국민들의 삶은 고달픈데 어디서 추위에 떨며 굶주리는 사람은 없는지? 노숙자들의 시름이 걱정이 된다. 제발 얼어 죽는 사람은 없어야 할 터인데.
오늘도 국회는 끓는 솥처럼 민주주의 없는 민주주의를 외친다. “하필이면 왜 이(利)입니까, 인의(仁義)인의가 있을 뿐”이라고 외쳤던 맹자의 사상을 엿보며 이 정부와 이 국회를 꾸짖는다.
당리를 위한 독기어린 아전인수(我田引水)! 민주주의인가 공산주의인가? 우왕좌왕 어설픈 사회주의를 가지고 민주주의라고 하면 정말 곤란하다.
그리고 남의 이야기를 전혀 듣지 않는 독불장군들. 경제는 앞을 내다볼 수 없고 나라의 미래는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이 정권 초기의 인수위원회가 국민들을 놀라게 하던 황당무계한 일들. 전교조, 전국노동조합, 시민단체, 종교단체, 뉴 라이트, 해병전우회, 등 각종 좌우익단체들의 유유상종, 초록동색. 광우병 괴담을 유포하는 언론들의 유언비어들!

교수신문에서 뽑은 올해의 고사성어는 중국 북송시대 유학자 주돈이가 통서(通書)에서 남의 충고를 귀담아 듣지 않는 세태를 비판하면서 “요즘 사람들은 잘못이 있어도 다른 사람들이 바로잡아 주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이는 마치 병을 감싸 안아 숨기면서 의원을 기피해 자신의 몸을 망치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 데서 비롯된 ‘호질기의(護疾忌醫)’다.

이 단어로 한해를 마무리 하고자 한다. 독자 여러분! 좋은 것만 기억하며 송구영신 하소서.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