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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 '동심초'는 당나라 기생 설도의 한시를 번역한 것이다. - 김안서 譯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갖되이 풀잎만 맺으랴는고  이 시는 당나라 기생 설도(薛濤)의 춘망사 네 수중에서 셋째 수 ( 風花日將老   佳期猶渺渺  不結同心人  空結同心草 )를 김억이 번역한 시이다. 독자에게는 이 시에 대한 비평 수백 편 보다 잘된 번역시 한 편이 훨씬 더 낫다. 이 한시의 번역이 너무 아름다워서 김성태가 곡을 입힌 것이  우리에게 애창되는 가곡 동심초의 가사가 되었다. 이것은 이미지 번역이다. 위의 번역에서 보듯 한시의 이해란 일단 해석의 문제이고, 시의 이미지를 한국적인 것으로 변용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이 시의 은유와 환유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자유롭게 가져올 수 있는 문화 번역, 이것은 당나라 문..
교과서 황조가 번역은 문제가 있다. 에서  ‘翩翩黃鳥’를 ‘펄펄 나는 저 꾀꼴새여’라고 번역한 것을 보면서 늘 못마땅해 했다, 그런데 이것을 또 ‘훨훨 나는 꾀꼴새여’로 번역하여 고등학교 교과서에 싣고 있다. “훨훨 나는 꾀꼴 새”는 있지도 않을뿐더러 날개 짓도 크고 멀리 날아가는 모양을 형상한 말이다. 여기에서 어떻게 암수서로 정다운 꾀꼬리의 이미지를 찾을 수 있겠는가? 소재가 시의 공간에서 고립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일반 사전적인 언어의 나열이 된다. 가령 자전에 “翩翩 : 새가 펄펄나는 모양”을 그대로 번역에 끼워 맞추는 번역이다. 이렇게 되면 이것은 시가 아니다.  시인 정지용은 “옥에 티나 미인의 이마에 사마귀 하나야 버리기 아까운 점도 있겠으나 서정시에 말 한 개 밉게 놓인 것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라고 했다. 번역은 시..
연암 박지원의 시론 '소단적치인' 연암 박지원의 "소단적치인(騷壇赤幟引)"은 시가에 있어서 문자메시지와 이미지를 창작논의 입장에서 거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연암의 시 쓰기이다.  “글을 잘 하는 자는 병법을 아는 것일까? 글자는 비유컨대 병사이고, 뜻은 비유하면 장수이다. 제목이라는 것은 적국이고, 전장(典掌) 고사(故事)는 싸움터의 진지이다. 글자를 묶어 구절이 되고, 구절을 엮어 문장을 이루는 것은 부대의 대오(隊伍) 행진과 같다. 운(韻)으로 소리를 내고, 사(詞)로 표현을 빛나게 하는 것은 군대의 나팔이나 북, 깃발과 같다. 조응이라는 것은 봉화이고, 비유라는 것은 유격의 기병이다. 억양반복이라는 것은 끝까지 싸워 남김없이 죽이는 것이고, 제목을 깨뜨리고 나서 다시 묶어주는 것은 성벽을 먼저 기어 올라가 적을 사로잡는 ..
문학은 기억과 상실의 미학. 예악은 문학의 자궁이다. “가장 슬픈 마음을 노래 한 것이 가장 아름다운 시가이다. 라고 주장한 P.b.셸리의 구절을 생각하면 「공무도하가」나 「제망매가」로 시작되는 한국의 시가는 아름다움의 극치이다. 문학은 어떤 의미에서 아름다움 찾기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관혼상제의 예는 기억과 상실에서 오는 의미부여와 그리움의 표현으로서 문학적인 필요성을 갖고 있다. 문학은 어떤 의미에서 기억과 상실의 미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악의 표현을 위해 자연과 세계에 대한 문학적 성찰이 필요하다. 아주 옛날 원시시대부터 원시종합예술의 성격은 크게 祭儀와 축제였으며 이러한 예악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문학의 발생과 관계가 깊다는 가설을 생각할 수 있다. 자연에 대한 성찰과 외물에 대한 인식의 방향도 예악과 관련되어..
조선의 성리학은 병폐요인이 아니라 하나의 미학이었다. 조선성종 때부터 대두되기 시작하던 훈구대신들과 신흥 사림들의 대립은 연산군과 중종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신흥 사림들의 득세로 이어졌다. 고려말기에 안향으로부터 주자학이 전래된 이래로 꾸준히 발전되어오던 성리학은 조선 중기를 거치면서 새로운 사상의 국면을 맞는다. 이른바 사화로 불리는 한바탕 정쟁은 성리학을 조선 도학의 새로운 이념으로 고착화 시키고 있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하늘을 나는 새 한 마리, 동네를 돌아다니는 개 한 마리, 어느 것 하나 성리학적 형상사유를 벗어나서 일상이 존재하기란 쉽지 않았다. 사림파의 득세로 이루어진 새로운 공간에 역동적인 성리정신의 탄생은 개혁과 창조의 충동을 모든 면에서 제공해 주었다. 이러한 상승의 분위기는 민족문화의 변화를 요구하고 방향을 정해주었으며, 하..
고려(korea)의 유래. 고려는 어떻게 해서 붙은 이름일까? 이수광이 지은 [지봉유설]에는 '산이 높은 것(고) 과 그리고 물이 맑고 고운 것(려)을 나타낸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결국 '산과 강이 아름다운 나라' 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 어디를 다녀봐도 사계절이 이렇게 뚜렷하고 산의 모양이 이렇게 아름답고 계곡물이 이렇게 맑은 나라는 드믈었다. korea는 정말 아름다운 이름이다. 우리 모두 민족적인 긍지를 가지자. http://file:///C:/Users/user/Desktop/ilovehankuk-1-1/7722692/7722692--%EA%B3%A0%EB%A0%A4(korea)%EC%9D%98-%EC%9C%A0%EB%9E%98.html
南九萬의 上疏文에 나타난 선비 의식 연구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중국 고대 결승에 대한 연구 중국 고대 ‘結繩’에 對한 一硏究 신두환 (안동대 한문학과 교수) -目次-1. 問題의 提起2. 漢字의 起源과 結繩3. 結繩에서 書契로4. 結論 이 논문은 漢字의 起源에 대한 敎育과 硏究의 一環으로 中國 古代의 結繩에 대해 硏究한 것이다. 한자를 교육하는 교사들은 한자의 기원을 교육할 때 결승을 언급한다. 5000년 중국 역사의 모든 문헌에는 蒼頡이 문자를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황제시대는 결승으로 나라를 다스렸다고 언급하고 있다. 결승은 언제 태동되어서 어떻게 발전되다가 어떻게 소멸되었을까? 결승은 정치에 활용되면서, 수많은 형태의 결승문자로 발전되었으며, 결승의 다양한 표현은 문자의 형태로 대신하여 표현되기 시작했을 것이다. 許愼의 「說文解字·敍」에도 蒼頡은 결승을 바탕으로 서계를 만들었다고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