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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신씨 시조 신익휴 금자광록대부는 장절공으로부터 12대손 평산에서 나왔다. 아주신씨 대종회 회장님 이하 유사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최근 아주신씨의 근간을 흔드는 시조 훼손 문제에 대응하느라 노고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악한 무리들이 주장하는 바는 전혀 사실도 아니고, 근거도 없고,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시조 신익휴를 숭모하고 아주신씨를 굳건히 지키고 종문들의 명예를 위해 노고를 아끼지 않는 아주신씨 대종회를 위해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장절공 신숭겸으로부터 내려와 평산 신씨 신익휴 금자광록대부에서 아주로 갈린 것을 분명하게 확인하여 우리 족보를 만들고 천양하신 조상들은 현명하고 박식하고 명망있는 학자들이었습니다. 이렇게 내려온지가 삼백년이 넘었습니다.   족보와 문헌에 실린 사실을 왜곡할 수는 없습니다.  저 일제시대 친일 사학자 신석호..
퇴재 신우 묘표, 우복 정경세 고려(高麗) 안렴사(按廉使) 퇴재(退齋) 신우(申祐)공의 묘표를 쓰다 우복 정경세 상주목(尙州牧) 관할의 의성군 단밀현(丹密縣) 주선리 관동마을 앞에 자그마한 돌비석 하나가 길 왼편에 서 있는데, 거기에는 ‘효자리(孝子里)’라는 마을 이름이 새겨져 있다. 고로(故老)들이 서로 전하기를 안렴사(按廉使) 신우(申祐)공이 살던 마을이라고 하며, 그 앞을 지나가는 자들은 경례(敬禮)를 하고 있다. 삼가 살펴보건대, 공의 휘는 신우(申祐)이고, 고려조에 벼슬하여 관직이 장령(掌令)에 이르렀다. 일찍이 전라도안렴사(全羅道按廉使)가 되었는데, 고려조의 고사(故事)에 때때로 근시(近侍)의 관원을 여러 도로 내려 보내어 산천(山川)에 제사 지내고 백성들의 풍속을 탐문하고 수령들의 근만(勤慢)을 살펴 출척(黜陟)하였다. ..
아주신씨의 시조 신익휴가 거제도에서 세운 군공에 대하여. 8하>, , 인종6년, 1128년, 기록. ,  에서 시조 신익휴의 군공을 받고 아주군에 봉해진 사실을 알 수 있다.  6년(송 고종 건염 2, 금 태종 천회 6, 1128) 동10월 남계(南界)의 해적(海賊)이 평정되었다.  이보다 먼저 남계(南界)에서 해적이 많이 일어났으므로, 어사승(御史丞) 정응문(鄭應文)을 선무사(宣撫使)로 삼아 가서 개유(開諭)하도록 했더니, 이때에 와서 명진(溟珍)ㆍ송변(松邊)ㆍ아주(鵝洲)3현(縣)이 모두 지금의 거제(巨濟)에 있다 의 해적(海賊) 좌성(佐成) 등 8백여 명이 투항하였다. 삼기현(三岐縣)지금의 삼가(三嘉) 에 귀후장(歸厚場)ㆍ취안장(就安場)의 2장(場)을 설치하고, 의령현(宜寧縣)에 화순장(和順場)을 설치하여 이들을 거처하게 하였다.>  고려인종 시기 김부식과..
아주신씨 시조는 신익휴. 신흘, 성은공, 영남유림들은 아주신씨를 이렇게 알고 있다. 세상에 가장 어리석은 자는 자기 시조를 부정하는 자이다. 항간에 시조에 대해 신영미를 주장하는 이가 있고, 경거망동하는 자들이 있는데 근거가 없다. 향산 이만도는 시조 신익휴를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고, 신영미에 대한 언급은 없다. 향산 퇴계의 후손으로 장원급제한 유명한 인물이다. 영남의 선비들은 아주신씨들을 향산 이만도처럼 이렇게 이해하고 있었다.  향산 이만도의 의 행장에는 아주신씨 시조 신익휴와 아주신씨 조상에 대해 상세하게 나와 있다. 이글을 쓴 향산 이만도는 영남유림의 큰 인물이었다. 李晩燾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관필(觀必), 호는 향산(響山). 경상북도 예안 출신. 1866년(고종 3) 정시에 장원급제하여 성균관전적에 임명되었다가 병조좌랑에 제수되었다. 이어 사간원정언에 임명되고, 홍문관..
아주신씨, 시조, 신익휴, 신채, 영남삼걸, 성균관 6행, 대산 이상정 아주신씨는 시조가 신익휴이다. 고려 때 거제도를 정벌하여 고려에 복속시킨 공의로 아주군을 봉받았으며, 이 분이 곧 아주 신씨의 시조이다.   인재공 신채는 아주신씨 중에 뛰어난 인물 중의 한사람이다.[진사시] 인조(仁祖) 24년(1646) 병술(丙戌) 식년시(式年試) [진사] 3등(三等) 10위(40/100)[상세내용] 신채(申埰)1610년(광해군 2)∼1672년(현종 13). 조선 중기 유학자. 자는 자경(子卿)이고, 호는 인재(忍齋)이다.본관은 아주(鵝洲)이고, 출신지는 경상북도 의성군(義城郡)이다.부친 행 상운도찰방(行祥雲道察訪) 신적도(申適道)와 모친 파평윤씨(坡平尹氏) 사이에서 4남 중 3남으로 태어났다. 형은 신연(申埏)‧신탄(申坦)이고, 동생은 신점(申坫)이다.장현광(張顯光)의 문하에서 수학..
인조(仁祖)의 친필 중국 바이두 사전에서 신두환이 발견한 인조임금(李倧)의 친필. 필체는 호방하고 힘이 있어 보인다. 嗚呼慘矣哉  朝者雷電之極矣 轟轟之聲 不翅驚心 烽烽之光 不翅慘目耳 震怖憂遑之除 覽此儞等之啓辭 實是藥石之至言 可不體之於心乎   아 참혹하도다. 조정이 천둥과 번개가 쳐서 지극히 위험하도다. 폭탄 터지는 소리가 마음을 놀라게 할 뿐만은 아니고, 번득이는 횃불들은 눈만 참혹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놀라고 두려워 허둥대는 사이에, 너희들이 이 광경을 보고 상소한 말은 실로 약석같은 지극한 말이다. 어찌 마음으로 본받지 않겠는가? 인조시대 명청교체기의 조선의 상황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안동대 신두환 교수 해독 http://file:///C:/Users/user/Desktop/ilovehankuk-1-1/15..
국회 한자어 '可否' 바로알고 쓰자. 국회 한자어 '可否' 바로알고 쓰자. 可否라고 할때 可와 否는 서로 반대 되는 의미가 아니다. 否란 글자는 ~인가 아닌가 여부를 양자택일을 말할때 쓰는 용어이다. '安否'는 편한가 편안하지 않는가 여부를 묻는 것이다.'適否'는 적당한지 적당하지 않는지 여부를 묻는 단어이다. 예를 들면 拘束適否審査 ; 구속이 적당한가 적당하지 않는가에 대한 판단을 심사하는 것이다. 이렇듯 可否도 마찬가지로 옳은가 옳지 않는가의 여부를 묻는 단어이다. 따라서 安否, 可否, 適否, 등의 한자어는 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지금 국회가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면서 찬성하면 '可'를 쓰고 반대하면 '否'를 쓰라는 것은 맞지 않는 말이다. 可와   不可로 판단해야 한다. 찬성이면 可 반대면 否 이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 否는 '..
비석의 미학 고대 동물의 형상과 그 미의식 비석의 미학.  신두환 안동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지금 비석 밑에 있는 거북 모양의 형상은 무거운 짐을 지기를 좋아하는 비희(贔屭)이다. 이것을 거북이로 오인하는데 그것은 잘못이다. 그 근원을 밝혀둔다. 아울러 우리 옛 기물에 새겨진 형상은 그 근원에 대한 이치가 있는 동물형상에서 얻어진 것이 많다. 궁궐의 지붕 위에 있는 짐승들은 어떤 의미일까? 또 북 위의 고리에 있는 동물 형상, 칼자루에 달린 장식, 궁궐의 지붕 있는 동물의 형상들, 향로의 동물 등 각종 기물에 새겨진 이름 모를 짐승들은 고대 상상의 동물로서 그 고오한 미를 발하고 있다. 궁궐에는 이와 같이 많은 동물이 있다. 순박미와 기괴미와 고오미가 넘치는 궁궐의 동물들을 찾아서 그 근원을 밝혀 보자.   성호사설 제6권 만물문(萬物門) ; 용..